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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go-round

회전목마.jpg

4층에서 8층까지 올라가는 데에는 호텔 건물의 외벽을 도는 거대한 회전목마를 타야했다.

나는 이것도 내가 만들어 놓게 된 장치인지 궁금해졌지만 이제 물어볼 사람은 없었다. 별 수가 없이 알록달록한 말 인형 위에 앉았다.

 

가만히 있자니 크러쉬가 가깝게만 느껴졌다. 사방의 어디서든 튀어나올 것 같아서 불안함을 누를 수가 없었다.

크러쉬는 아름다웠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와 같은 모습이지만 나 자신과는 다른 존재였다.

확신에 차 있는 눈동자, 흔들림 없는 눈동자, 살의에 가득한 눈동자를 기억했다.

또 다시 마주친다면 그 때도 그 눈동자를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죽어버릴 게 틀림없었다.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크러쉬를 피할 수 없다면, 역시 목적지로 현실을 빌며 이 세계에서 나가는 것이 정답일까?

애초에 이 세계는 뭐하는 세계일까?

이건 다 꿈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딸랑딸랑'

뒤 쪽에서 방울종소리가 들려왔다. 이 세계에 들어온 뒤로 질리도록 들었던 소리. 귀에 익은 소리. 피이드의 소리였다.

뒤편을 돌아보니 말과 마차 사이로 피이드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말에서 폴짝 뛰어 내렸다.

"크러쉬가 가까이 와 있어. 피해야 해."
 

피이드의 옆으로 잔디밭에서 보았던 경첩 없는 문이 나타났다.

나는 말없이 문 고리를 붙잡고 이번엔 현실로 가게 해달라고 빌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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