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셔의 충고
나는 X와 헤어지고 나서 얼마 후, 캐셔를 찾아갔다.
캐셔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손을 내저었다.
"금기가 그런 일을 순순히 해주진 않을 거야."
"피이드의 붉은 세상은 유명한 것 같네."
"금기가 떠벌리고 다니니까.
이 세계의 주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
"난 모르는 걸?"
캐셔는 설명하는 게 귀찮아 보였지만 입을 열었다.
"피이드는 연인을 마술공연 중에 잃었어. 실수로 말이야."
"그럼 붉은 세상의 그 여자가 피이드의 연인이었던 거야?"
캐셔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았다.
"붉은 세상에 다녀온 사람은 많지 않지."
"그래?"
"너, 정말로 그 세상을 없애주고 싶어?"
피이드가 원치 않게 내 기억을 봐왔지만, 나는 내가 원해서 그의 기억을 봐왔다. 내가 그의 과거를 보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의 목적지는 자꾸 그의 기억으로 들어갔다. 피이드는 자신의 기억을 돌아다니는 나를 불쾌해하면서도 뭐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기억들 속에서 피이드는 잘 웃었고, 잘 울었으며, 길거리가 아닌 무대에서 공연을 했고, 불 마술을 좋아했다. 하지만 환상세계에서 나는 피이드가 불 마술을 공연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크러쉬에게 홀려 있는 날 구하기 위해서 문을 연 것은 피이드였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함께 지내온 시간이 많아진 지금은 알 수 있다. 원래대로의 성격이라면 그는 내가 죽게 놔뒀어야 했다. 그런 나를 구한 것은 내 기억을 보았기 때문이다.
타들어가고 있는 집에서 죽어가고 있던
'나'의 기억을.
그리고 나도 보았다.
불 속에서 형연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와 괴로움에 가득했던 얼굴을.
그게 모든 이유였다.
보았기 때문에.
"너는 더 이상 코마가 아니구나."
"무슨 소리야?"
"조심해. 다들 별명을 붙이려 할 거야."
"별명?"
"일루젼, 금기 같은 별명말이야.
내가 이름이라고 말한 '캐셔'도 사실은 별명이야.
별명이 붙어버리면 그 때부턴 이 세계에 눌러앉게 돼.
그러고 나면 현실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몰라."
처음 듣는 소리였다.
별명이 붙어버리면 이 세계에 눌러앉을 수 있다는 말은.
"피이드와 금기는 처음에 코마와 크러쉬였어.
그 두 명이 쫓고 쫓기면서 이 세계가 만들어 진 거야.
그러다 서로에게 별명을 붙였지.
일루젼과 타부라고.
그리고 그렇게 이 세계에 정착했어.
둘 다 떠나지 못하게 되어버린 거야.
이 곳에서 '목적'이 생겨버렸으니까."
"목적?"
"너에게도 생겼잖아? 붉은 세상을 없애고 싶다는 목적이."
붉은 세상을 없애고 싶어 하면 할 수록 이 세계를 떠나지 못하게 된다는 소리일까?
그거라면 이미 늦은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을 때 캐셔가 말했다.
"관두는 편이 좋다고 말해두지.
금기 같은 놈을 만났다간 당장에라도 별명이 붙어버리고 말 걸.
그 전에 현실로 돌아가라고,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