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n (1)
"기억해?"
눈을 뜨자 눈앞의 남자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눈, 코, 입이 꽤나 미형인 남자. 또렷한 눈썹과 또렷한 눈매.
"누구세요?"
멍한 정신으로 묻자, '남자는 '쯧' 혀를 차고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내 쪽으로 숙이고 있던 상체를 폈다.
"일어나. 갈 길이 머니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나서 정신이 좀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판단력이 제로가 된 건 아니다. 이 남자는 비호감이다.
"누구시냐니까요?"
"연기는 그쯤이면 충분해, 코마."
나는 쩝, 입맛을 다시며 잔디밭에서 일어났다.
"어째서야?"
"뭐가 말이지?"
"어째서…, 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
"그것 말고는 전부 가져갔으니까."
"누가?"
"크러쉬가."
"크러쉬?"
크러쉬?
크러쉬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기억은 없다.
"기억이 이상해."
나는 내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곧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모 른 다
나는 나를 모른다
방금 전까지 알고 있었는데…?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현실세상에서 무엇을 했었는지.
"완벽한 코마가 된 걸 축하해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피이드는 모자에서 흙을 털어내고는 머리에 쓰며 말했다.
"일어나, 코마. 여긴 위험해."
"위험하다고…?"
"설명할 시간이 없어. 지금 바로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넌 죽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상태로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그리고는 흙길로 이끌려 나갔다.
"이건?"
흙길 위에는 벌써 몇 번이고 보았던 투박한 문이 서있었다. 하지만 경첩도 없고, 붙은 데도 없이 문이 될만한 나무 판떼기가 길 한 복판에 떡하니 서 있는 거다. 아주 많이 이상했다.
"문이지."
피이드는 건조하게 대답하곤 문 옆에 안내인처럼 서 버렸다.
"어서 열어. 무슨 문인지는 이미 알고 있잖아?"
피이드는 막무가내로 나를 문 앞으로 잡아 당겼다.
"뭐해? 지체할 시간은 없다고."
피이드는 성질이 급한 편인 듯 하다.
나는 천천히 손잡이를 당겼다. 매번 하얀 빛을 뿜어내던 문 너머는 이번엔 울렁이고 있었다. 무지개 빛으로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좋아, 이제 들어가."
하지만 이거 아무래도….
"근데 있잖아, 피이드."
"가!"
퍽, 하고 밀려 문 안 쪽으로 몇 걸음을 떼어버렸다. 현기증과 함께 세상이 돌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