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the ZERO
시원한 기운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눈앞이 새카만 어둠으로 물들었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통증 또한 스르르 소멸되어갔다. 머릿속에 얼얼한 감각을 느끼며 나는 눈을 떴다.
새카맸다. 눈 앞도, 양 옆도, 머리 위도, 발밑도.
아무것도 없는 곳. 아무 곳도 아닌 곳. 존재하는 것이라곤 모든 것을 감싸버리는 암흑 밖에 없는 곳.
"알고… 있어. 나. 이곳을 알아."
이곳을 지나왔었다.
나는 '피이드 펠다'를 알고 있었다.
달칵.
저 앞 어딘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온 기억이 생생히 눈앞에 선명했다.
문은 투박했다. 문틈으로 들어온 빛에 구리 빛으로 빛나는 손잡이. 그 손잡이를 잡았었다. 손에 닿았던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기억했다.
"기억났어. 피이드 펠다."
피이드 펠다. 일루젼.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던 남자. 환상세계에서 방울종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기묘한 남자.
"넌 날 아는 구나. 나도 널 알고."
그는 항상 바쁘게 날 쫓아다녔다. 가을 볕 좋은 시골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때부터 계속.
그와의 기억은 추억이 되지 않는다. 내가 자꾸 기억을 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고집불통이로군.]
어둠 속에서 피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문 뿐이다.
나는 이미 걷고 있었다. 문을 향해서. 열고 나가기만 하면 나를 위한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 있는 천상의 문을 향해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향해서. 이곳은 그러기 위한 공간이다. 어둠에 빛이 뻗어오면 누구나가 다 그 쪽으로 걸어가게 되어 있었다.
"고집이 센 게 아니야. 겁이 많은 거지."
[그 둘은 때로 같은 말이야.]
나는 걸음을 멈췄다.
문이 바로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