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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너는 나그네구나?"
캐셔는 내 말을 듣다 말고 불쑥 그렇게 말했다.
"자꾸 종소리가 들린다면 피이드 펠다겠군. 네 안내자 말이야."
"나그네는 뭐고, 안내자는 뭐야? 이건 무슨 게임이야?"
내 질문에 나를 물끄러미 보던 캐셔는 돌연 짜증을 냈다.
"그 녀석은 도대체 뭐하는 거야? 나그네를 이렇게 버려두고."
나는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 같은 나그네들은 대부분 카르마로 빠져버리지."
"카르마는 또 어딘데?"
척 듣기에도 한국의 지명은 아니었다.
"카르마는 곧 카르마야. 이 세계엔 위치나 방향같은 건 없어, 키쟁이 아가씨."
이 세계?
캐셔는 마치 내가 다른 세상사람인 것처럼 말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세계로 넘어온 걸까?
"카르마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곳이야?"
"그 반대지."
캐셔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카르마는 게으른 자들의 낙원이야. 나그네들은 보통 그곳을 목적지로 해."
이번에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캐셔는 가만히 있다가 곧 내 상태를 눈치채고는 한숨을 쉬었다.
"너 정말 아무 기억이 없단 말이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캐셔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넌 아직까지 카르마에 가지 않은 거지? 문을 열지 않았어?"
"문?"
내 맹한 대답에 캐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연 기억도 없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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