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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아버지와 이복동생인 미라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을 되찾은 나는 진한 현기증을 느끼며 거실로 돌아왔다. 아기는 얌전히 앉아 있다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해맑게 웃는 얼굴이 이번엔 어딘가 낯이 익게 느껴졌다.
"미라니?"
아기는 까륵 웃었다. 아기를 안아들고 눈을 마주했다. 어쩐지 확신이 들었다.
"미라구나, 너."
장미라.
내가 살아주기를 바라는 나의 이복동생.
나를 현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유일한 사람.
기억 속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현실로 나가게 된 것 또한 아니었다.
나는 현실과 관련된 곳으로 와 있었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이 현실과 연관이 있다면 아기는 미라일 것이 틀림없었다.
'딸.랑.딸.랑'
익숙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피이드가 서 있었다.
"볼 일이 남았어?"
"아니."
집안도 다 둘러보았고, 현실에 대한 기억도 일부지만 기억해냈다. 나는 망설이다가 아기를 거실 바닥 위에 내려놓았다. 집에 아기 혼자 두고 가기가 껄끄러웠다. 피이드를 바라보니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네 아기가 아니야."
"나도 알아."
"실제도 아니지. 여긴 환상세계니까."
나는 아기를 두고 창가로 다가갔다.
"그렇다면 너도 실제가 아닌거잖아."
"너도. 나도."
전혀 그런 말투가 아니었지만 피이드의 말은 서글프게 들려왔다.
"빨리 돌아가면 돌아갈 수록 좋아. 돌아가지 못하게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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