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Poppy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 없는 자기 소개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달 하나만 댕그랑 떠있는 기찻길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그는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목에는 나비넥타이가 매어져 있었고, 머리엔 공연을 하는 마술사들이나 쓸 법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렇게 특이한 남자를 언젠가 봤었다면 절대 잊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일루젼. 피이드 펠다야."
멋대로 자기소개를 마친 그는 우스꽝스러운 마술사 모자를 벗더니 모자 속에서 새하얀 꽃 한 송이를 꺼내들었다. 스윽 내미는 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 마술사가 맞았구나.
"받아. 지금의 너에겐 이게 어울려."
"…나를 알아?"
물으며 받아들었다. 피가 튄 참상 위에서 새하얀 꽃송이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청량하고 고운 하얀 색의 꽃.
홀로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이 이질적이다.
"맘에 드는 모양이지?"
기묘했다.
낯설지 않은 느낌.
꼭 전에도 이 사람에게 꽃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답지? 하지만 위험해. 네가 하는 짓과 똑같아."
또 나왔다. 샘 솟듯이 나온다. 손가락 사이에서 세송이. 등 뒤로 숨겼던 손에서 두 송이. 어딜가나 볼 수 있는 마술이었지만 이젠 좀 신기해졌다. 받아들면서도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넌 자꾸 네 기억을 먹고 있으니까."
어느 새 흐드러지게 양손에 가득한 꽃송이들.
일루젼, 피이드 펠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를 나는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소개를 하려고
했는데……
……나는………
나는…… 내 이름은…
내… 이름………이……
……뭐… 였………
…내 이름… 내…… 이름…은………
.
.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에 가득한 하얀 꽃들을 공중에서 놓아버렸다.
.
.
.
눈 앞이 점멸했다